엄마의 육아 휴직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마당에, 아빠의 육아 휴직은 더더욱 멀고 먼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딴 나라’라고 아빠의 육아 휴직이 쉬운 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3년, 아빠들이 육아 휴직을 내지 않는 이유로 미국 회사 중 15%만이 유급 육아 휴직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2014년 보스턴대학교 노동과 가정 센터의 한 연구는 아빠가 육아 휴직 명목으로 받는 휴가 일수는 엄마가 출산 및 육아 휴직 명목으로 받는 휴가 일수의 1/30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육아 휴직을 사용한 남성들은 이 기간이 아이와 유대를 형성하며 산후의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내를 도와줄 수 있는 무척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4명과 어머니 2명이 아버지의 육아 휴직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아빠 1. 데이브, 35세
모아 둔 휴가를 4주 썼고, 아내가 겨울방학 직전에 산통을 시작해서 2주 더 썼다(나는 교사다). 나는 ‘슈퍼 아빠’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도움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딱 ‘첫 아이를 본 아빠’다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아내가 모유 수유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돌봤다. 아내가 먹고 마실 것을 확실히 챙겼다. 아내가 쉴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딸은 아내 옆이 아니면 잠들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에 요새를 만들어주었다. 기저귀를 많이 갈았다.
내가 옆에 없었다면 나는 그 시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을 것이다. 아이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는 일의 무한 반복이다.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때 집에 없었으면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옆에서 보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빠 2. 에릭, 36세
내가 일하는 회사는 정해진 육아 휴가는 없지만 내 상사가 유급 휴가를 일주일 줬다. 그 뒤로 나는 한 달 동안 휴가를 냈다. 아내의 육아 휴직이 끝났을 때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일시적 노동 불능 제도로 6주 휴가를 냈다.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그 시간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딸과 단둘이 있는 시간은 정말 귀중했다. 아내도 없이, 나와 딸만 있었다. 나는 아침이 정말 좋았다. 딸이 눈을 뜨면 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복직한 지금은 언제나 딸을 보모에게 데려다주느라 허둥대고 딸은 까탈스럽다. 하지만 내가 휴직하고 딸을 보던 때는 딸은 늘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
회사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몇 마디 듣긴 했다. “왜 남자가 그렇게 시간이 많이 필요해? 남자가 그렇게 오래 쉬는 건 좀 어처구니 없는 일이야.” 이런 유의 말이었다. 하지만 내 상사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며, 휴가를 내라고 독려했다. 솔직히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보다 조금 어리고 곧 아이를 낳을 동료가 있다. 누군가 그에게 나한테 상담하라고 권했고, 나는 그에게 휴가를 내라고 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빨리 흘러가는 시기라 아무것도 놓쳐선 안 된다.
엄마 1. 아만다, 27세
지금 두 돌이 된 딸을 가졌을 때 내 남편은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었고 유급 휴가 일수는 많지 않았다. 딸이 태어났을 때 그는 휴가와 병가를 모아서 일주일의 휴가를 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응급 환자 목록에 자주 올랐고, 우리는 돈 걱정으로 힘들었다. 나의 6주간의 육아 휴직은 완전 무급이었다. 그의 일주일 휴가는 유급이었다.
그는 너무나 빨리 복직해야 해서 낙심했지만, 우리 주위에선 그게 보통이라 그러려니 했다. 다행히 우리 딸과 그 사이의 관계에는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목요일마다 쉬며 온종일 딸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게 딸과의 유대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다. 내 생각에는 이상적인 육아 휴직은 부모 모두에게 최소 12주인 것 같다. 나는 출산 후 3개월이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부모 둘 모두에게 말이다.
아빠 3. 마샬, 28세
아내의 출산 직후 부분 유급 휴가 4주를 얻었다. 부분 유급이라 버틸 수 있었다. 아내는 딸을 사랑하고 훌륭한 어머니였지만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다. 모유 수유에 문제가 있었고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나는 감정적으로 아내를 지지하면서, 집안일도 돌봤다. 모유 수유에서 이유식으로 바꾼 후 내가 아이를 먹이고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아내는 최소한 잠을 더 오래 잘 수는 있었다.
유아 휴직 중에도 나와 딸 사이에 즉각적인 유대는 없었다. 그건 나중에 이뤄졌다. 딸이 4개월 되었을 때 나는 2주 휴가를 냈다. 그때는 딸이 좀 더 반응이 있었고, 성격을 더 드러냈다. 단둘이서 우리의 유대를 발전시키는 그 시간은 정말 좋았다.
아빠 4. 라이언, 35세
첫 아이인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와 아내는 어떤 직업이건 아버지가 12주 유급 휴가를 받는 노르웨이에 살고 있었다. 서류 작업은 정말 간단했고, 1년에 걸쳐 나눠 쓸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에 오고 나서 둘째를 낳았는데 나는 휴가를 전혀 내지 않았다. 당시 하던 일은 시간 활용에 융통성이 있는 일이어서 일하는 시간 앞뒤로 딸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와 딸 사이의 관계에 큰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급 휴가가 있었을 때) 시간을 내는 게 훨씬 편했다.
노르웨이와 미국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기대가 정말 다르다. 육아 휴직이 있으면 부모 둘 다 집 밖에서 계속해서 일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부모는 일하지 않는가. 내 아내는 간호사다.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휴직을 하고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같이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특별하게 들리지 않겠지만, 그건 내가 언제나 잊지 않을 우리의 의식이었다.
엄마 2. 브리트니, 27세
결혼 9년 차인 남편은 내가 아이 셋을 낳는 동안 한 번도 휴가를 내지 못했다. 지금 우리 현실은 이렇다. 막내아들은 7개월이고 심장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심장절개술을 받았다. 막내가 태어날 때는 남편이 옆에 있을 수 있었지만 곧 일하러 가야 했다. 막내가 심장절개술을 받는 날에도 남편은 일해야 했다. 수술은 정오에 시작했고 오후 5시에 아들이 회복실로 옮겨졌다. 남편은 5시에서 11시까지 일해야 했다.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건 기뻤지만, 아들이 나왔을 때 나는 외로웠다. 우리 아기가 수술실에서 나온 직후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창백한 채로 온갖 기계와 모니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느라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 나 혼자 견뎌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그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중요한 순간에 함께 있기 힘들다. 남편이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간 게 몇 번인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남편을 탓하지는 않는다. 나는 남편의 고용주, 아버지가 아이들과 가족과 함께 있는 걸 극히 힘들게 하는 현재 시스템을 탓한다.
*각 인터뷰는 편집 및 요약되었습니다.
*허핑턴포스트US의 Parental Leave Is A Huge Deal For Dads. Just Ask These 6 Parents를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