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재필기념재단(회장 최정수)은 지난 6월 19일(일) 필라델피아 서쪽 근교 미디아(Media) 시에 위치한 서재필기념관에서 ‘제2회 미주한인 시민권의 날(Korean American Citizenship Day)’기념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서재필재단 창립 이사인 오성규 박사의 기도와 임마누엘 한국학교 학생들(Ashley와 Claire Kang )의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되었다.
특별히 미주한인 시민권의 날을 위해 펜주 상원과 하원이 Resolution과 Citiation을 각각 결의하였고, 이어 필라델피아 시의회에서도 Resolution을 결의 하였다. 이날 펜주 상원의원 킴 컬니(Tim Kearney)와 필라델피아 시의원 데이비드 오(David Oh)도 6월 19일을 ‘미주한인 시민권의 날(Korean American Citizenship Day)’로 지정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이종섭 뉴욕총영사관 필라델피아사무소장과 메리 게이 스캔런(Mary Gay Scanlon) 연방 하원의원, 펜 주지사 아시아 태평양 자문위원 스테파니 선(Stephanie Sun, ED, PA GACAPAA), 밥 맥마혼(Bob McMahon) 미디어시 시장, 이주향 미북동부한인회 회장 등이 차례로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
데이비드 오(David Oh) 필라델피아 시의원 등 미 정치권 인사들과 필라델피아, 남부뉴저지 한인회, 월남참전용사회, 필라델피아 노인회, 몽고메리 노인회 등 한인단체와 아시안연합에서 15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 데이비드 오 필라델피아 시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6월 19일인 이날은 서재필 박사가 1890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지 132년째가 되는 날이며, 서재필기념재단은 기념관 재단장 사업이 끝난 후 교육과 계몽 활동을 위하여 다양한 행사를 통해서 이 날을 역사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국내외 여러 인사들과 함께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다.
▲ 유스팀이 드럼 공연을 펼치고 있다.
특별연사로 참석한 워싱턴 DC 영사관 권세중 총영사는 “서재필박사의 한국에서의 젊은 시절 20세때 시작된 역사적인 업적 뿐만아니라, 미국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앞장서신 그 본받을 정신을 계속 후세대가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 서재필기념재단 내 라이프 아카데미의 ‘시니어 합창단’이 공연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어 주요 연사로, 중부 미시간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호프 엘리자베스 메이(Prof. Hope Elizabeth May)교수는 서재필박사의 한국, 미국과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한 비젼, 그 비젼의 실현을 위해 한없는 모임, 출판과 단체활동을 통한 교육의 업적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6월 19일 Juneteenth 와 미주 한인 시민권의 날을 기념하면서 1897년(125년전)독립회의의 한 결의안으로 서재필 박사의 미국에 있는 흑인 노예제도의 비참한 일을 지적하며 한국의 노비제도의 부덕함을 지적하여 만장일치로 결의하므로 100여명의 노비가 자유인이 된것을 ‘The Korean Repository’ 기록을 인용하며 연설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
▲ 호프 엘리자베스 메이 교수(왼쪽)가 서재필기념재단 최정수회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의 미국이민 효시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취업 희망자 102명이 미국 상선을 타고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날로 하여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서재필 박사는 이보다 약 13년이나 빠른 1890년 6월 19일에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였으므로 실제로는 이날이 미주 한인 이민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정수 재단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해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펜실베니아주 및 지역 행사로 제 2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새로 생긴 Faith and Liberty Discovery Center는 서재필박사를 미국역사에서 자유(Liberty)를 위하여 크게 공헌한 22명의 ‘Changemaker’ 중 유일한 아시안 사람으로 인정하며 전시하고 있다” 고 말하면서 “서재필재단과 Asian American Coalition도 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Changemaeker로써 힘쓸 것이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이종섭 소장은 “한인사회에서도 많은 호응이 있기를 바라며, 영사관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제2회 미주한인 시민권의 날’ 행사를 위해서 유스팀의 드럼공연, 성악가 변진환씨의 축가와 서재필기념재단 내 라이프 아카데미의 ‘시니어 합창단’의 출연으로 행사는 더욱 풍성하게 마무리 되었다.
▲ 행사가 끝난 후 내외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편, 서재필 박사는 일평생 동안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 그리고 독립국가 건설에 크나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로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으며, 그의 생애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재필은 1864년 1월 7일 전남 보성 외가에서 태어나서 1882년 최연소로 과거 급제했다. 개화사상에 눈을 뜬 서재필은 1884년 12월에 김옥균·홍영식·박영효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삼일천하’로 끝났고 주역들은 역적이 됐다.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미국행 배를 타고 1885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밤에는 YMCA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만난 독지가인 존 홀렌백의 도움으로 펜실베이니아의 해리힐맨 고교를 다녔다.
고교졸업후 워싱턴으로 이동한 서재필은 1889년 컬럼비안대(현 조지워싱턴대)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하여 1892년 졸업했다. 인턴을 거쳐 이듬해 한국인 최초로 의사 면허를 얻고 워싱턴에 개인 병원을 개업했다.
▲ 서재필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서재필 박사의 사진.
조선정부로부터 사면이 된 서재필은 1895년 12월 귀국해서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민주주의와 독립의식 고취에 힘썼다. 독립문 건립과 만민공동회 개최 등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수구세력과 일본·러시아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1898년 5월 다시 한국을 떠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격렬하게 독립운동을 했다. 이승만, 정한경 등과 함께 4월 14일부터 3일간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열어 한국독립을 호소하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서재필은 미국인들을 규합해 전세계 23개 지부에 2만여 회원을 거느린 ‘한국친우회’를 만들었으며, 3년간 전국을 다니면서 미국인 10만여명을 대상으로 300여회의 연설도 하였다.
그는 영문 월간지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을 창간해 일제의 만행과 독립의 당위성을 알렸으며, 1922년 워싱턴 군축회의와 1925년 호놀룰루 범태평양회의에도 참석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훗날 한국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서재필은 두 번에 걸쳐 전쟁에 자진 참여하게 된다. 1898년 5월 미국으로 돌아온 서재필은 미국-스페인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미육군군의관으로 입대를 하였다. 1942년에는 미군 징병의무관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사회참여에도 헌신적이었다. 1905년 문방구 사업에 뛰어든 이후 70여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로 크게 성공할 무렵에는 로타리클럽, 프리메이슨 및 미국안보동맹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병리학자로서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고, 의사로서 주민건강을 위해 특집 컬럼을 규칙적으로 투고하는 등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 서재필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서재필 박사의 유품 중 의료용 도구.
해방직후에는 미군정 최고고문이자 과도정부 특별의정관 자격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한미 양국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서재필의 이러한 미국시민으로서의 모범은 미국정부 등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어, 1945년 1월에는 미의회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서재필박사 사후인 1975년에는 미디어시에서 서재필기념비 건립을 위해 로즈트리 파크 부지 일부를 무상으로 내어 놓았다. 2008년에는 워싱턴 DC에 한국인 최초로 서재필동상이 세워졌고, 2021년 5월에는 필라델피아 시내에 소재한 미국독립기념관 건너편 박물관에 미국의 위대한 인물 22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어 전시되어 있다.
한국정부는 1977년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고, 1994년 4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치했다.(미주한인 시민권의 날 문의: 215-224-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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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서재필기념재단>